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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근현대, 악기도감 - 악기수개청 - 악기도감 - 악기조성청 - Coggle Diagram
조선 후기
향악의 변천
고려 향악곡이 완전히 사라짐
정재반주를 위한 악기 편성의 구분이 없어짐
창사가 한문을 바뀜(향악 정재도)
종묘악
세종, 세조 때의 규칙적인 장단, 영조 때까지 계속 되긴함
조선 말기 ➡️ 불규칙 장단으로 바뀜
규칙적 등시가로
경모궁
정조가 사도세자 기리기 위해 만듦
희운지악, 융은지악, 숙안지악의 7곡
보태평, 정대업을 바탕으로 축소 개작한 것(속악원보) - 종묘악장의 불규칙한 가사를 모두 4언 4구로
고취악
전정헌가: 대편성
전정, 전후고취
소편성
거문고, 가야금, 편종, 편경
일정한 장소에 위치하여 연주
행악
전부고취: 수레 앞, 취고수
후부고취: 수레 뒤, 세악수
내취악대
1) 어가 행차 시 연주 담당
2) 선유락의 반주음악 담당
취타내취: 나발, 나각, 태평소, 징, 나, 용고
세악내취: 삼현육각
황내취: 황색옷, 중앙출신 ➡️ 원내취
흑내취: 흑색옷, 지방출신 ➡️ 겸내취
모두 황색옷 통일
악곡
조선 전기
신악: 여민락, 보태평 중 계우, 정대업 중 독경, 발상
송사악: 낙양춘, 오운개서조, 미후사, 수룡음, 성수무강, 태평년
조선 후기: 보허자, 낙양춘, 성수무강, 태평년, 오운개서조, 미후사, 수룡음, 환궁악 (8개)
번음촉절
가락, 장단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악곡의 절주가 빨라짐
조선후기 궁중, 민간 둘다 나타남
번음: 청성자진한잎
기존 태평가 반주에 없던 피리, 젓대의 장식음안 샛가락 많이 첨가
촉절
여민락: 4장부터 급박
영산회상: 한배에 따른 형식
가곡: 10박 편장단
조선후기 정재
조선 전기와 다른 점
순조 때 새로운 정재 많이 창제
당악, 향악 정재 구분 희미
독무 출현: 춘앵전, 무산향
향당교주 ➡️ 정재반주의 한 악곡명으로 사용됨
순조 28년부터 정재반주곡의 아명 사용, 이듬해 본명 대신 원무곡이라는 정재 반주곡 대명사가 사용
향악정재
순조 이전: 무고, 동동, 무애 + 봉래의, 향발무, 학무, 처용무
순조 때: 24개
지방에서 궁중으로 들어온 잡극 계통의 정재: 사자무, 항장무
새로운 향악 정재의 새로운 반주 음악
주로 향당교주, 보허자령
가곡 계락: 항령무의 반주
영산회상: 사자무의 반주
대취타: 선유락, 항장무
당악정재
기존: 헌선도, 수연장, 오양선, 포구락, 연화대, 몽금척, 하황은, 육화대
새로 만듦: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제수창, 최화무
반주음악: 향악 사용
창사의 선율: 향악곡에서 차용
음악기관
장악원: 악기 제조를 위한 임시 관청 설치
숙종, 영조 때 악기조성청 설치하여 편종, 편경 제작 ➡️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 황, 우 제작 X
아악이 명맥만 유지됨
임진왜란, 병자호란
인조 25년, 처음으로 종묘를 비롯하여 사직과 문묘 등 제향에서 아악 연주
광해, 효종, 영조 때 악학궤범 복간하려는 노력
숙종 때 악기 조성청에서 부족한 악기 제작 (방향, 훈, 어 등)
향당교주, 변주곡의 등장 / 성악곡의 기악곡화
성악의 기악곡화
성종 이후 향당교주 급격화
여민락, 보허자는 당악 흔적 완전히 사라짐
향악화된 기악곡 보허자를 풍류방에서 율객들이 연주
영산회상, 보허자, 시조, 가곡 등에서 변주곡 파생
판소리 더늠, 유파 등도 변주곡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음
거문고 조현법과 안현법의 변천
악학궤범: 경안법 > 역안법
금합자보: 경안법 = 역안법
양금신보: 경안법 < 역안법
역안법: 농현을 가능하게 하고 전성, 퇴성 기법 생김
오주연문장전산고: 우조, 평조의 구분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됨
악조명의 변천
악학궤범 7조 ➡️ 양금신보 4조
19세기 말: 우조, 평조, 계면조만 남게 됨 (오주연문장전산고)
계면조는 유예지까지 5음음계 계면조였으나 이후 3음음계 계면조가 됨
악현의 감소
고음화의 경향
기존 악곡의 낮은 음역 악곡들이 높은 음역으로 전환되어 변주되는 경향
성악곡의 기악곡화: 여민락, 영산회상, 보허자, 낙양춘, 청성곡, 자진한잎
근현대
창악
협률사
극장
정부가 처음으로 민간 음악인들 중심으로 조직한 최고의 예술단체
1906년 폐쇄
후에 관인구락부 생김
원각사 설립 후 도태
단체
1907년에 설립 ➡️ 1909년 원각사 폐쇄와 함께 조직 와해 ➡️ 협률사, 연흥사, 광무대, 단성사
원각사
처음으로 신극 공연
창극: 이인직에 의해 주도됨 but, 원각사 망하고 막 내림
조선 성악 연구회
1933년 설립
직속극단: 창극좌
여류 명창 가담
판소리 5마당 + 배비장전, 숙영낭자전, 장화홍련전, 유충렬전 등 창극으로 꾸밈
19-20세기 판소리 5명창: 김창환, 이동백, 정정렬, 김창룡, 송만갑
기생조합과 권번
여기들이 원각사에서 궁중무용과 정재 공연
다동조합: by 하규일, 기생조합의 효시
광교조합
권번으로 이름 바꿈
황하만년지곡: 최초의 창작 국악곡
국악의 수난기
왕가의 아악이 위축
음악기관
고종 32년: 장악원
광무 1년: 교방사
순종 1년: 장악과
순종 4년: 아악대
1913년: 이왕직 아악부
이왕직아악대 - 아악대 ➡️ 이왕직 아악부
아악부원 양성소
아악사들의 세습제 폐지
아악생 모집, 교육하여 궁중음악 계승
졸업 후 이왕직 아악부 근무
민간음악 양상
조양구락부
민간기구
조선악과, 서양악과, 악서 및 악보편찬
➡️조선정악전습소로 재출범
조선정악전습소
박영효 중심의 정악유지회 후원
조선정악전습소의 명맥을 이음
이습회
악기도감 - 악기수개청 - 악기도감 - 악기조성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