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영수의 살인은 본질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상대의 주장에 실제 사례를 들어 반박, 전태일의 분신은 간접적으로 노동자 여건 개선에 본질적 영향을 주었음.)시다, 재단사 등으로 일하며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침해를 경험한 전태일은 1969년 평화시장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근로기준법 위반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노동청에 진정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이에 '삼동친목회'를 조직, 재차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였지만 받아지지 않고, 삼동회 회원들이 피켓시위를 하려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당하자 전태일은 분신 항거하였다. 이를 계기로 1970년대 민주노동운동은 큰 발전을 맞이한다. 또 산업화과정에서 희생당하던 노동자의 삶이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