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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image, 생태계 - Coggle Diagram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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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7세기 이전
4세기 경에 만들어진 신라 양식의 토기가 울릉도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울릉도 주민들이 신라와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울릉도 사람들은 어업을 주로 하였으며, 울릉도에서는 주변에 풍부한 어장을 보유한 독도가 보였으므로, 당시에도 울릉도 사람들은 이 섬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리라 추정
삼국 시대 및 그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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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이 신라의 지방행정체계 속에 포함되었다기 보다는 공물을 바치는 복속 국가, 즉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고려시대
후삼국시대인 서기 930년 우산국이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고려사》(1451년, 조선 문종 1년 편찬)에 다음과 같이 있다.
우릉도(芋陵島)에서 백길(白吉)과 토두(土豆)를 보내 방물을 바쳤다. 백길에게 정위(正位), 토두에게 정조(正朝) 품계를 각각 주었다(「고려사」 권1, 세가 태조 13년 8월 병오일).
1018년(고려 현종 9년)에서 1022년(고려 현종 13년)사이에는 우산국 이 동북 여진의 침략을 받아 심각한 피해를 입어 농사를 짓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등장한다. 이에 현종은 1018년에는 이원구를 파견하여 농기구를 제공하고, 1019년에는 여진의 침략으로 망명하여 왔던 우산국 백성들을 모두 돌려 보내고, 1022년에는 여진에게서 약탈 당하고 도망하여 온 우산국 백성들을 예주(지금의 경북 영해)에 배치하여 관가에서 그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그 지방에 영구히 편호하고자하는 바램을 수락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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