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9년과 1683년에 두 차례의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았는데 둘 다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오스트리아가 본격적으로 높은 위상을 가졌을 때부터 인구 수만명을 보유한 주요 도시였다. 1683년에는 인구가 110,000명에 달해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정도로 신성 로마 제국의 핵심 도시였고 1804년에는 인구가 230,000명으로 당시 주변의 주요 도시들이 인구 수만명에 불과할 때 독보적인 위상을 가졌다.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5년만에 두 차례나(1805, 1809) 굴복했다. 1814~1815년 빈 회의로 다시 복귀해서, 1848년까지 30년 남짓한 빈 체제가 논의된 곳이 되었다. 1848년 3월에는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1857년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을 해체하여 현재의 링슈트라세를 조성하였다. 이 도로를 따라 국회 의사당, 시청사, 대학, 오페라 하우스와 극장, 기타 관청과 증권 거래소 등이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