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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산책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 주는 영향 (산책--> 걷기로 개념을 확장 (걷기가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산책
산책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
주는 영향
산책--> 걷기로 개념을 확장
걷기가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까? :star:
뇌학학적 측면
방출
베타엔도르핀 --> 쾌락
도파민 --> 쾌감
세로토닌 --> 행복한 감정
부신 -->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 -->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줌
자극
대뇌변연계/대뇌신피질
뇌의 겉면, 만두로 비유하자면 대뇌변연계는 만두피 같은 존재. 그 대뇌변연계의 가장 겉면을 대뇌신피질이라고 한다. 대뇌변연계가 생명활동과 관연된 일을 한다면, 대뇌신피질은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걸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뇌간을 통과해 대뇌변연계에서 대뇌신피질에 도달한다. 따라서 걸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두뇌의 광범위한 부위를 계속 자극하고 단련하게 된다.
광범위함. 활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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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신피질의 다양한 영역을 총괄하고 있는 곳은 전두연합령으로, 전두연합령은 지(知)의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영역에서 보내온 수 많은 정보를 통합하고, 의지나 행동을 결정하는 곳이다. “사람이 걷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고, 손을 흔들며 균형을 취하고, 피부로 공기의 온도를 느끼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온몸의 감각을 총 동원해야 한다. 이런 모든 정보가 대뇌신피질에 전달된다. 이때 받아 들이는 다양한 자극이 뇌를 활성화시킨다.” 걸을때는 대뇌신피질과 대뇌변연계가 같이 활동한다. 몸을 움직여서 걷고 싶다는 욕구와 거기에서 뭔가 지적인 쾌감을 얻고 싶다는 이성이 합쳐져서 대기속에 발산된다.
오감
오감을 통해 뇌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고, 그것들이 뇌에 광범위하게 자극을 준다.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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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이 있는 동작은 신체건강에 유익함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리듬 운동을 전후로 혈액과 소변에 있는 세로토닌 양을 조사해보았더니 운동후에 단연 그 양이 늘어나 있었다."
걷기는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 즉 호흡이나 심장 박동에 가장 가까운 의도적 행위이다.
자연의 음양의 조화(낮과밤 등) --> 신체는 자연의 음양의 조화를 따른다
루소에게
자연은 선한 것이었으며 인간은 자연에 가까울수록 선하다. 이런 맥락에서 걷기란 소박한 인간의 상징이며 자연 안에서 존재하는 방법이었다.
걷는사람은 탈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체력에만 의존한다. 그러므로 걷는 것이야 말로 본질적으로 진보하지 않은 자연의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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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화되지 않은 생각/ 연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가설
향수
편리와 빠름만을 추구하던 현대인들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자연과의 교감을, 쉴새없이 쏟아지는 디지털시대의 새로움보다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유로운 느낌으로의 회귀를 원하게 되었고 이는 낯설지 않은새로운 여가현상인 느림에 대한 추구로 연결되었다.
자본주의 체계가 아닌것에 대한
산책은, 내가 ‘세속’이라는 표현으로 표상한 자본주의적 체계와의 마찰로 인한 상처의 각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산책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와 불화하는 어떠한 삶의 양식’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본능
직립보행
인간에게 있어 동물과 구분되는 역사적 시점을 꼽으라면 직립보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했던 행위는 두발로 일어서서 걷는다는 것이었다.
직립보행이 인류의 지능과 언어의 진화에 심호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지능은 두발로 걷다보니 생긴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두 다리로 서거나 걷다보면 무게중심에 항상 신경을 써야 하고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근육을 자주 쓰고 바꾸어야 한다. 또한 역동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다리의 움직임을 팔, 다리, 몸통의 움직임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렇게 직립보행에 따른 복잡한 감각운동제어 때문에 더 큰 뇌와 복잡한 신경계가 필요했다. 또 이렇게 진화하게 된 뇌가 식량을 찾아나서는 계획을 짜거나, 새로운 도구를 만들거나,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것과 다른 일에 쓰이게 되었고 그러다가 언어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Aiello, Mithen)
동경
워즈워스에게 걷기는 하나의 경험이 되면서 문화적인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낭만주의가 갖는 풍경에 대한 취향과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대한 동경, 자연을 이상으로 삼는 생각은 소박하고 순수하고 고독한 것에 대한 욕망
을 낳고 걷는 것이야 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며 풍경 속을 산책하는 것은 명상적이며 정신적인 활동이라 여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걷는 것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이 되었고 걷기의 느림은 미덕이 되었다.
사회/역사적측면
감내
순례
순례는 걷기라는 신체의 물리적인 방법으로 영적인 구도를 구축함으로서 물질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만남을 걷기로서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순례에서 걷기는 최종목적지까지 자신의 신체로 한발짝, 한발짝 걸어감으로써 고초를 당하고 영혼의 목적지에 다다르는 정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종종 발은 가장 낮은 곳으로 인식되곤 하는데 비천하게 여겨지는 땅 위를 직접 걸음으로써 신에게 겸허히 자신을 내려 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순례의 길 위에서는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미묘한 경계를 이루는데 추구의 대상이 영성이지만 그 방법은 가장 물질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순례는 물적인 것과 경적인 것의 만남이기도 하고 육체와 영혼의 합일이기도 하다. 순례는 믿음과 행동을 결합시키고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을 결합시킨다.
미국의 작가이자 불교도인 그레텔 얼리치는 중국에서 태산을 비롯한 순례지 등산을 하고 나서 이런 글을 남겼다. ‘순례길을 떠난다’에 해당하는 중국어 ‘ch’ao-shan chin-hsiang’은 직역하면 ‘산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뜻이다. 산은 황제 혹은 조상이기 때문에 그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뜻인 듯하다.
철학자들
오랜시간동안 걷기는 인간에게 이동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사용되었지만
인간의 삶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동의 측면 외의 철학적이며 문화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걷기가 철할과 맞물릴 수 있음은 그리스 시대의 소피스트들에게서 발견되는데 대중을 찾아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고 선동하는데 걷기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도시가 생기면서 걷기는 문학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걷기의 문화적인 의미는 철학으로 옮겨지는데 이점은 그리스의 소피스트로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스인들이 사유하기 위해 걸었다는 믿음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학당을 세웠을 때 일종의 산책로인 주랑이 만들어졌고 이곳에서 학생들이 모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걸으면서 강의하고 가르쳤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무리의 학생은 소요학파(Peripatos)로 불리어졌는데, 이것은 그리스어로 ‘주변을 걷다’라는 뜻이다.
소피스트와 걷기의 이동은 당시 시대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였는데 그들이 정보와 사고에 목말라 하는 대중들을 찾아 떠돌아 다니면서 설득하고 논쟁하는 민주주의의 기술을 전파했던 방랑객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소피스트들이 소요파로 불리우고 걷기와 철학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시작되었으나 소피스트들은 걷기와 그에 따른 사유 자체를 중요하게 인식했다기보다 그들의 걷기가 이동이라는 수단적인 의미에 더 가까웠다.
점차 목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서 그 자체가 목적성이 있게 변함.
기피
노동자들/노동사회
6-10세기, 농민들은 밭에서 일을 하기 위해 다리힘을 아껴두어야 했다. 16세기에 마차가 개발되기 전까지 걷기는 선택이 아니었다.
불쾌함
상하수도시설이 없었던 시기
19세기, 프랑스 오물의 거리. 다른 유럽의 도시들도 마찬가지 였다. 이 시기에는 하수시설이 원시적인 상태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동물의 시체가 길가에 그냥 버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탈리아어로 ‘창자’를 뜻하는 budello에는 ‘골목길’이라는 뜻도 있다. 사람들은 악취와 먼지를 통해 각각의 거리를 구분했다. 거리마다, 동네마다 특유의 악취와 먼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e.g. 베를린- 지독한 치즈냄새)
18세기 후반까지 영국에서는 여행 자체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길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고, 노상강도가 들끓었다. 여유있는 사람들은 말이나 마차를 이용했고, 걸어가는 것은 거지나 강도의 표시였다.
자동차가 나오고 도로는 다시 걷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우월감
탈것이 생기면서 걷기의 의미가 달라지게 되었다.
짐승을 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발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며 이것은 가축이 없는 사람보다 우월함을 의미했다.
비천한 땅에서 사람의 발로 이동하는 것은 지루하고 고된 일이라는 의미가 생긴 것이다. 인류가 영원히 땅에 붙어있을 수 밖에 없으며, 짐을 들고 이동할 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걷기 속에 내포되게 되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마차(탈것)을 이용했다.
자연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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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심미적 체험을 추구하던 특권층은 정원이나 산책로를 벗어나 걷지 않았다. 소로의 시대에 이미 정착되어 있었고 우리 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자연 취향은 특수한 역사를 갖고 있다.
자연을 문화적인 것으로 만드는 역사이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주제를 생각하며 특정한 경치속을 거닐고 싶어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러한 취향이 영국의 정원에서 형성되어 바깥으로 퍼져나간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18세기는 자연을 선호하는 취향을 만들어냈다.
즉, 보다 많은 대중에게 자연을 선호하는 경향을 심어 주었고, 모종의 관습적인 표현 통로를 제공하였고, 그런 표현에 해방의 가치를 부여하였고, 주변 세계를 변화시켜 그러 성향을 고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무수한 공원, 여행자, 자연보호 구역, 오솔길, 여행 안내인, 여행 클럽과 단체들, 문학과 예술 작품이 생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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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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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인간 문화의 하늘에 펼쳐진 별자리 중 하나이며, 이것을 이루는 세 별은 육체, 상상력, 드넓게 펼쳐진 세상이다. 세 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별 사이에 그어진 선은(선을 긋는 것은 문화적인 목적을 위해서 걷는 행위이다.) 별들을 별자리로 만든다. 별자리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부과된 것이다.
없었던 것에 대한 이질감
모리스 마플즈, 1782년 모리츠는 영국을 도보로 횡단하는 동안 여관의 주인이나 종업원들에게 조롱을 당하거나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지나가는 마부들은 마차에 타라고 끊임없이 권했다. 모리츠는 자기가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이유가 여행의 방식 때문이라고 했다. “이 나라에서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야만인이나 기인 취급을 당한다. 모두들 쳐다보고 불쌍히 여기고 의심하고 피해간다”
취미
예술
드로잉워킹
GPS 드로잉. GPS를 들고 걸으면서 자기가 이동한 경로를 이어서 그림을 그리는 신종 예술이다. 영국의 '제레미 우드'가 처음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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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Long
육체를 도구로 걸음으로써 자연을 직접 호흡하고, 접촉하며 거기서 오는 감동과 체험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산책을 종이에 기록한 작품들, 풍경 속을 걸을 때 생긴 자취를 찍은 사진들, 야외 활동을 참고로 실내에서 제작한 조각들 등이다. 그는 경험의 구체성이라 할 수 있는 걷는 행위와 걷는 위치를 실험하는 동시에 그렇게 걷는 것을 설명하는 언어와 측정의 추상성을 실험한다.
경험은 빈약한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상상력을 작동하게 할 수 있게 한다.
걷기가 예술이 된것이 18세기 이후인것 같다. 14세기에도 숱한 나그네가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명상하면서 경치를 즐기기 위해 그랬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걷기의 역사, 레베카 솔닛)
사진/외광회화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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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예술은 걷기 행위의 가장 단순한 측면과 가장 복잡한 측면에 주의를 요한다. 가장 단순한 측면이란 시골 산책을 통해 육체가 대지를 가늠하고 대지가 육체를 가늠하는 방식, 도시 산책이 예기치 않았던 사회적 만남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한편 가장 복잡한 측면이란,
사유와 육체의 관계가 가지는 풍요한 가능성, 누군가의 행동이 다른 이의 상상력으로 이끄는 유인책이 되는 방식, 모든 몸짓이 보이지 않는 조각품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방식, 걷기가 세계의 지도를 그리고, 세계에 길을 내고, 세계와 만남으로서, 세계의 모습을 바꾸는 방식, 행동이 문화를 반영하고 재창조하는 방식이다.
놀이
지하철노선정복놀이
포켓몬 고
flâneur(플라뇌르), 산보자
산보자 즉 flâneur(플라뇌르)는 16세기 이후 '거니는 자', '어슬렁거리는 자', '빈둥거리는 자' 등의 부정적 의미를 갖는 프랑스 말인데, 19세기 이후로는 부정적 의미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미를 갖는 말로 정착되었다. 예를 들어,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나폴레옹III세 치하에서 오스망(Haussmann) 계획에 의해 정비된 파리의 대로를 걷는 산보자(flâneur)를 근대적 메트로폴리스를 그리는 예술가이자 시인(artist-poet)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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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도시 개념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완전히 압도했기 때문에, 현대의 관광객이 다른 도시의 여행 안내서를 탐독하듯, 도시인은 자기 도시의 여행 안내서를 열심히 읽었다.
찰스 디킨스의 이론, 19세기 초반에 도시가 너무 거대해지고 복잡해져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도시를 낯설게 느끼기 시작하면서 당대 도시인은 자신들의 도시에 대한 사유를 하기 시작했다. 디킨스는 도시인의 고독에 대한 원인을 시골의 고독에는 사람이 아닌 존재와의 교감이 있지만 도시의 사람은 세상이 낮선 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인 이방인이 된다는 것 자신의 비밀을 간직한 채 지나는 사람들의 비밀을 상상하며 말없이 걷는 것을 도시 삶의 특징으로 보았다.
당대의 혼란스러운 도시 상황에서 도시산책이 기쁨인 이유는 정체성과 산책의 여유에 대한 관계성 때문이고 이것은 도시 보행을 현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산보자와 구경꾼은 다른 의미이다.
"산보자와 구경꾼(바도)을 혼동하지 말고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산보자는 항상 자신의 개성(individuality)을 충분히 갖고 있는 반면, 구경꾼에게서는 개성이 사라져버린다.
개성은 외부 세계에 흡수되고, 그는 자기 자신을 상실할 정도로 마비된다. 자신에게 전해지는 스펙터클의 영향 속에서 구경꾼은 몰개성적 존재로 전환된다. 그는 더 이상 인간적 존재가 아니며, 대중과 군중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빅토르 푸르넬(Victor Fournel)은 1867년 저서의 한 장을 "산보의 기술"이란 이름으로 할애해 산보는 게으른 행위가 아니라 도시 전경이 갖는 다양성과 풍부함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산보는 도시 경험을 포착하는 "움직이는 사진술(moving photography)"
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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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산보자
플라뇌르의 정확한 의미를 만족스럽게 설명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플라뇌르의 정의들 가운데 공통점이 있었다:
파리를 거니는 예민하고 고독한 남자의 이미지.
(걷기의 역사, 레베카 솔닛)
여가
군중
소외나 초연
관찰
걷기
특히 아케이드에서 배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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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떠돌이/떠돌다” 라는 단어는 명사로나 동사로나 걷기 작가들 사이에 인기 있는 단어였다. ‘방랑자’나 ‘집시’라는 단어도 그랬고, 저쪽 아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유목민”이라는 단어도 그랬다.
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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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endent(독립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영향을 받는)
길
도로포장
바닥재, 도로, 인도의 표면이 매끄러워진것도 편안하고 안전한 보행에 기여했다.
거리의 도로들이 모두 포장되고 깨끗해졌기 때문에 하얀 신발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걷기는 골목, 도로, 무역로를 만들었고, 국지적 의미의 장소와 지구적 의미의 장소를 만들었고, 도시와 공원을 만들었고, 지도, 여행 안내서, 자동차 기어를 만들었다.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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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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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노동층은 차비가 없어 걸어다녔으며 부유계층은 자신들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마차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해 자신들이 만든 정원을 산책했다.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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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20세기, 도보가 생겨나고 걷기의 규칙들이 생김. (e.g. 문을 드나드는 것, 길 모퉁이를 돌다가 누군가와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에 대한 양보를 배움-둥글게 선회하거나, 서로 팔짱을 끼고 걷거나 등) 처음에는 서로 밀쳐대며 경쟁을 벌였다. 런던, 뉴욕, 로마 같은 곳에서는 특정한 기간동안 일부 거리와 동네에 그들만의 걷기가 등장해 때로 그곳 사람들의 사투리나 은어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신체조건
거리, 속도, 신체능력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운동으로서의 걷기가 거리, 속도, 사람들의 능력, 장비, 필요한 비용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도구
바퀴, 의족, 운동화, 각종 운동장비들
의족의 등장으로 선천적 장애자, 부상자, 환자, 노인들이 한층 수월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신발도 과거에 비해 외관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훨씬 걷기에 편해졌다.
20세기에 들어서 자동차의 발명과 함께 도시는 보행자에게 적대적인 환경으로 되어갔다. 도시의 설계는 자동차 위주로 계획되고 인도와 횡단보도는 점차 줄어들어 가며 현대인의 이동은 각종 탈거리에 의존하게 된다. 산책자의 사적 통찰의 공간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걷기는 특별한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아무리 인류가 자동차의 유용함에 빠져있어도 걷기는 인간에게 있어서 영속성을 가지기 때문이고 자동차의 이동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지구상의 모든 곳을 곧게 뻗은 길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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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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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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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것, 즉 세상으로 나가 여흥 삼아 거니는 것에는 세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 갈 곳이 있어야 하고, 병이나 사회적 장애물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는 육체도 있어야 한다.
투쟁
간디는 비폭력주의 운동을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바다까지 걸어가는 <소금행진>으로 걷기를 보여준다. 바다까지 걸어간 간디는 직접 소금을 만듦으로서 영국의 세제법에 대항했고 비폭력은 약자가 강자에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특별한 도구로서 걷기는 비폭력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되었다.
오래걷기대회
행진/시위
역사가 에릭 홉스봄 “항쟁과 반란이 일어나기에 이상적인 도시는 인구가 조밀해야 하고, 너무 넓으면 안된다 반드시 끝에서 끝까지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상적인 반란의 도시에서 권력(부자, 귀족,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은 도심의 빈민가 밀집 지역과 가능한 한 섞여 있어야 한다.” 모든 혁명의 도시는 옛날 도시다. 혁명의 도시는 보행자의 도시이며, 주민들은 편안하게 이동하고 주요한 지리에 익숙하다. “도시의 재건은 잠재적 반란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못한 영향을 미쳤다. 폭이 넓은 새 길은 대중 시위 내지 대중 행진에 이상적인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산책로가 체계적으로 정비되면서, 길은 주변의 거주 지역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고립되었으며, 집회는 폭동으로 이어지는 대신 의례적인 행진으로 바뀌었다.”
시위의 효과를 가늠하는 방법은 많다. 시위는 직접적으로나 언론을 통해서나 많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위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동일한 신념을 간직한 사람들과 거리를 행진하는 순간에는 대중 공동체라는 보기 드문 마술이 펼쳐진다. 교회나 군대나 스포츠 팀에서 이런 가능성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처럼 절실하지 않으며, 군대나 스포츠팀의 추동력은 그렇게 고귀한 이상이 아니다.
교류활동
구애
걷기는 자유로웠고, 공원에서든 광장에서는 대로에서든 으슥한 뒷골목에서든 연인들에게 구애할 수 있는 반(半)사적인 공간을 제공하였다. 함께 행진하는 것이 집단의 연대감을 조성하고 강화하는 것처럼, 보조를 맞추면서 함께 걷는다는 행위는 두 사람들 감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결속시킨다.
:star: 내가 생각하는 산책은 선택적(노동의 개념이 들어가지 않은,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며,
여행 안내책자를 보듯 새로운 것들을 습득하는 것이며,
오감에 자극을 받는것, 윌리엄 길핀의 말처럼 picturesque 즉,
일정한 거리를 두고 주변의 것들을 그림처럼 바라보는 것이며,
일정한 리듬이 있게 천천히 걷는 것.
또한 예술의 일부분에 활용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를 걷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