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구약의 하나님 인식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부자의 하나님도, 풍요의 하나님도, 권력의 하나님도 아닌 약한자의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 유대인들은 율법과 환상, 신앙관을 투영하여 그리스도, 메시아를 자신들의 잣대로 만들었고, 이는 다시 율법에 반영되어 권력욕을 정당화 시키는 외식의 정점을 이루게 된다(그리스도의 정치적 권력과 폭력 정당화).
이 때문에, 유대인들의 신앙관은 폭력적이 되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절대적 주권으로 전쟁에 능하실 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도 능하시는 분이시라는 설명이 필요했다. 실제로 모세오경과 더불어 대부분의 예언서는 포로기 이후에 쓰여지는데, 나라의 망조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극히 유대인적 관점의 세계관으로 점철된다(JEDP 중 P 에 해당; 여호와 문서, 엘로힘 문서, 신명기 문서, 제사장 문서). 곧 유대인들에게 힘과 희망을 주기 위해 강력한 하나님의 부각이 필요했고, 이에 성경 저자의 편집이 거기에 시작이 맞춰진 것.
이 관점은 유대인들의 습성과 직결되는데, 민족끼리도 질투와 시기가 강하여 지도자를 올바로 세운 적이 거의 없는지라 나라가 늘 사분오열. 예수님 시대까지도, 그리고 그 이후로 한참 동안 나라 없이 유기하며 살았고, 그 덕에 늘 강한 메시아, 곧 강력한 힘과 권세를 추구하고 바라며 살아옴. 그리고 그것이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민족성이 되어 버림.
이를 보면, 구약에서의 하나님 관점은 유대인적 관점과 시편기자적 관점(선지자적 관점)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인과 선지자를 박해하고 멸시했던 유대인들의 습성이, 그리스도까지 올바르지 않게 투영했고, 그 결과물로 인하여 구약의 기록은 유대인들의 욕망이 끼어들게 된 것.
유대인적 관점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살인이 정당할 수 있었고, 폭력이 당연한 것이었다. 스데반의 죽음이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